[유키란] 夢

*사망 소재



 또 꿈이다. 미나토 유키나는 낯익은 스테이지에 눈을 비비며 펜스를 잡았다. 애프터글로우의 무대가 한창이었다. 옆을 둘러보니 리사도, 사요도, 아코도, 린코도 없었다.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어두운 색이었다. 유키나는 이 꿈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서 도망가야했다. 이 스테이지든, 꿈에서든 어떻게든 도망쳐야했다. 


 그러나 유키나를 비웃는 것처럼 바닥에 묶인 발은 움직이지 못 했다. 억지로 팔에 힘을 줘 보지만 펜스를 잡은 팔도 마찬가지였다. 애프터글로우의 무대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함성이 더 거세지면서 유키나는 더 세게 몸을 흔들었다. 


 펑,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붉은 불길이 치솟으면서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환호하던 사람들과 란을 제외한 멤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라이브 클럽에선 유키나와 란만이 마주보고 있었다. 유키나는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끼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다. 


 미타케 씨.......

유키나 씨, 저 사실. 


 유키나의 부름에 환하게 웃던 란은 말을 채 다하지 못 하고 몸이 떠올랐다. 라이브 클럽은 유키나가 잘 알고 있는 골목길로 바뀌어져 있었다. 제 몸보다 한참이나 큰 트럭과 충돌한 란은 까슬한 아스팔트 도로로 떨어지며 나뒹굴었다. 횡단보도의 하얀색 선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가며 채 눈감지 못 한 란이 유키나를 응시했다. 


아니야, 미타케 씨.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혼잣말을 중얼이던 유키나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식은 땀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눈을 뜬 유키나는 어둡고 깜깜한 공기에 안도했다. 등 뒤로 닿은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은 침대 위라는 걸 의미했다. 손을 뻗어 협탁 위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무의식적으로 이메일을 누르던 유키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보내봤자 수취인 불명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였다. 한참이나 액정을 바라보던 유키나는 휴대폰을 종료시켰다.


 어디서부터 잘못이었을까. 기억을 되짚자면 무대 직후였던 것 같다. 그날따라 유난히 둘 다 저기압이었지. 왜였더라, 엉망이된 머릿속은 아무리 떠올려도 제대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무의식이 기억을 감추려는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무대 세트리스트가 갑자기 바뀌었던가, 평소 쓰던 음향기기가 말썽이라 갑자기 다른 대체를 이용했던가.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 늘 똑같이 하던 대로 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트러블로 번졌다. 정말 별거 아닌 이야기였는데 신경질적으로 대화를 중단한 유키나는 라이브 클럽을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쫓아나온 란에게 사고가 났다. 






 트럭 운전사는 졸음 운전을 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와 사죄하고 있는 그를 보며 유키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울어 기운이 빠져 있는 애프터글로우 멤버들에게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액자에 갇혀 웃고 있는 얼굴에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끌어안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졸음 운전이었을지 몰라도 간접적인 사인은 저때문이었다. 그날,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있었더라면 란은 죽지 않았을 거였다. 죄책감은 어깨를 짓누르고 목소리를 앗아갔다. 미나토 유키나는, 사고 이후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리사가 두고 간 악보를 주시하던 유키나는 상자를 꺼내 넣어두었다. 나중에로 미루던 악보들이 어느새 박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키나, 잠은 좀 자고 있어? 괜찮아? 벌써 몇 년째야. 걱정스레 묻는 제 소꿉친구를 걱정시키는 걸 알면서도 빈말이라도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잠을 못 자겠어, 리사. 걱정 가득한 얼굴로 품에 안아 주는 리사에게 뒷말은 할 수 없었다. 미타케 씨가, 란이... 꿈에서 매번 사고가 나. 나 때문에 꿈에서도 편히 쉬질 못 해. 그래도 그렇게라도 미타케 씨를 볼 수 있어. 이런 얼룩진 마음을 고백할 수 없었다. 곡 작업이 막바지라 그래. 걱정하지 마. 몇 년째 하는 익숙한 거짓말은 늘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두었다. 


 사고가 나고 일주일이 지나서부터였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겨우 선잠에 든 날, 유키나는 꿈에서 미타케 란을 만났다. 그날의 기억 그대로. 그뒤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그런 꿈을 꿨다. 몇 번은 기억을 리플레이시키는 것마냥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 주더니 이제는 저마다 다른 상황으로 란이 나타났다. 상황은 달랐지만 엔딩은 늘 똑같았다. 택배 운송 트럭에 치여 그 골목길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게. 불면증 처방을 받아보기도 하고 심리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아무에게도 짐을 내려둘 수 없었다. 가끔 집 근처에서 애프터글로우 멤버들이랑 마주쳤지만 오히려 위로를 받는 건 자신이었다. 특히 언제였던가, 미나토 씨가 이러는 거 란도 원치 않을 거라는 츠구미의 말은 칼이 되어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하자와 씨, 말은 고맙지만 나는 괜찮아. 로젤리아에게도, 애프터글로우에게도 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유키나는 자신이 꼭 기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키나, 오늘........ 자동 응답기에 남겨진 리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키나는 몸을 더 둥글게 말아 웅크렸다. 란 기일이야. 모카랑 다같이 다녀올까 하는데 유키나도 같이 가는 게 어떨까 해서. 생각 있으면 연락 줘. 밥은 제대로 먹고 있어?  유키나는 리사에게 연락하는 일 대신 도망치듯 제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방문이 닫히는 것 뿐인데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숨이 막혔다. 손톱보다도 작은 알약 두 알을 삼킨 유키나는 침대에 누웠다.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라이브 무대가 눈에 밟힌다며 리사는 기일마다 납골당을 방문했다. 물론 유키나에게도 함께 가자며 매년 제안했지만 나중에 갈게, 한 번도 지킨 적 없는 약속과 함께 유키나는 거절했다. 주위에서 받았던 동정에 부응하는 힘듦, 슬픔, 그런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납골당에서 란의 이름을 보게 되면 꿈에서 조차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유키나는 납골당에 가는 것 대신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드는 일을 택했다. 그냥 회피하고 싶은 거잖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래서였을까 이런 날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래도 미타케 씨, 보고 싶어. 회색 블레이저를 입은 뒷모습을 떠올리며 유키나는 눈을 감았다.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에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온실이었다. 아래를 보니 바닥에는 자갈길이 깔려 있었다. 홀린 듯이 자갈길을 향해 걷던 유키나는 익숙한 뒷통수에 걸음을 멈춰섰다. 검은색 까만 단발머리에 고개를 흔들릴 때마다 살짝 비치는 빨간색 브릿지는 매번 떠올리던 모습과 꼭 닮아 있어 주먹을 쥐었다. 지금까지 이런 곳은 없었는데....... 그러나 늘상 맞이한 전개와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란의 근처로 다가간 유키나는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미나토 씨. 

응, 미타케 씨. 


 파란색 넥타이는 멈춰진 란의 시간을 보여 준다. 성인이 되고, 제법 어른스러워진 제 얼굴과는 다르게 앳된 티가 여전했다. 고등학생에 갇힌 모습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대답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이제 이런 거 그만해요. 


 유키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꽃을 다듬던 란이 고개를 돌려 유키나와 눈을 마주했다. 


미타케 씨,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도저히 정신 차릴 기미가 안 보여서 제가 깨우러 왔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미나토 씨 탓이 아니에요. 


 트럭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갇혀서 매일 저 기다리니까 노래도 못 부르고. 노래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요. 

그런 거 아니야, 미타케 씨. 

그런 게 아니면 뭔데요. 

나는, 그냥. 

그런 게 아니면 오지 마요. 미나토 씨랑 저는 다르단 거 알잖아요.


유키나에게 시선을 거둔 란은 다시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꽃잎이, 란의 머리색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유키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안 오면 미타케 씨 혼자 이런 곳에서 남아있어야 하잖아. 


온실의 꽃과 나무가 한순간에 시들어 사라졌다. 푸른 색으로 가득하던 공간은 어둠에 칠해진 듯 검은색으로 가득했다. 란은 녹아 사라진 꽃을 쥐고 있던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유키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어두운 방은 온통 검정이었다. 


그건 미나토 씨랑 상관없는 일인데요.

내가 어떻게 미타케 씨만 내버려 두고, 

미나토 씨 때문에 사고난 게 아니에요. 


 운이 나빴던 것 뿐이에요. 급하게, 변명하는 것처럼 란의 팔을 잡던 유키나는 일순간 행동을 멈췄다. 쓰게 웃는 란의 얼굴을 보며 유키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차마 건넬 수 없는 말로 가득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해, 미타케 씨. 


아무에게도 하지 못 하고 속으로만 삭였던 말을 토해내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토 씨 잘못이 아니에요. 나야말로 너무 늦게 찾아 와서 미안해요.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유키나를 감싸안은 란의 온기가 따뜻했다. 꿈인데, 꿈일 텐데 예전의 일을 생각나게 해 유키나는 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교복을 적셨다. 미나토 씨, 좋아해요. 잔뜩 구겨진 얼굴로 고백하는 게 어이없어 웃었더니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씩씩거리던 게 떠올랐다. 나쁜 뜻은 없었다. 옥상으로 불러내길래 또 무슨 소릴 하려나 싶어서 갔더니 순정만화처럼 고백하는 게 귀여웠을 뿐이다. 대답을 재촉하며 화를 내는 게, 고작 한 살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애 같았는데 지금의 란은 유키나보다도 성숙해 보였다. 입고 있는 교복, 앳된 얼굴은 멈춰진 학생의 신분을 의미했지만.  그 고백에 대답 대신 안아 줬던 게 시작이었는데. 


미나토 씨,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세요. 이제 여기 오지 말고. 

미타케 씨, 조금만 더. 가기 싫어. 

많이 좋아해요, 미나토 씨. 


 한 번 터진 눈물은 잠길 줄 몰랐다. 유키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단순히 꿈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란을 놓친다면 영영 끝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유키나의 어깨를 잡고 품에서 떼어놓으며 밀어내는 란은 단호했다. 유키나느 저를 밀어낸 란의 옷깃이라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순간 구멍에 빠지는 것처럼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유키나는 란을 불렀다. 암전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유키나는 뻗은 손을 천천히 내리며 잔뜩 젖은 볼을 닦아내었다.  얼마나 잠든 건지 커튼 사이의 창밖은 어두웠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여 무늬 하나 없는 이불을 바라보던 유키난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옷장을 열어 버리지 않고 보관해둔 옛 교복을 찾아 꺼냈다. 고등학생 때보다 키도 조금 커 작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유키나는 여의치 않았다.


 책상에 엎어둔 액자 속 인물과 눈을 마주치던 유키나는 아까의 꿈을 곱씹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갈 수 없다면 같아지면 되는 거였다.  역시 그런 곳에 미타케 씨를 혼자 두고 올 순 없었다. 






햄찌 님과 함께한 연성 교환물입니다~! 넘 오래되고 원래 소재로 쓰자니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 같아서 조각글이라도 바칩니다... 너무 급마무리된 것 같아 죄송하지만 받아주세요~! 

유키란이랑 모카란 만큼 메리 배드 엔딩이 어울리는 애들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물이 어땠든 본인들만 행복하면 오케이입니다 메리 배드 엔딩 최고 ㅎ


백합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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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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